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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시장 역사상, 우리나라에서 단 한번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을 오늘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대한항공의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이 주주들의 의결권 행사에 의해 대표이사직을 박탈당한 사건의 이야기이다.

이제까지 전례가 없었던 사례이며, 앞으로도 이런 일을 또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희소성있는 사건이 바로 오늘 발생한 것이다. 오늘을 계기로 그동안 주주친화와는 담을 쌓고 지냈던 재벌가의 높은 콧대가 꺾일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도 많은 투자자들이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지 않을까 한다.

물론 대한항공과 조양호 회장은 스스로 자신들의 발목을 찍은 처지인지라, 다른 재벌 기업들은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경영권 방어를 더 공고히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대한항공에서 20여년 전에 자신들의 경영권을 지키고, 외국인 이사가 선임되는 것을 막고자 주주의 2/3 이상이 동의해야 이사로 선출될 수 있다는 규정을 만들어 둔 것이 지금에 와서야 자신들의 뒤통수를 치리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대부분의 기업들이 주총 참석 주주들의 50% 이상 동의만 얻으면 이사를 선임할 수 있기에, 오너 일가와 우호지분을 합치면 50%가 거뜬히 넘는 다른 대기업들은 이번 대한항공 주주총회를 웃으며 바라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기업들의 상당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그동안 '허수아비'라고 놀림을 받던 처지에서, 이번에 조양호 회장의 이사 선임을 반대하는 의사를 밝힌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어찌 보면 국민연금이라는 기관이 주식투자를 한다는 것은 국민들의 피같은 돈을 모아 투자하는 것이기에, 국민들의 의견과 정서를 가장 적극 반영해야 하는 투자기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대기업들의 주가방어나 해주고, 주총에서 재벌을 위한 거수기 역할을 하는 것은 대다수의 국민들이 바라왔던 국민연금의 모습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민연금은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거나 국민 정서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기업의 총수들에게 얼마든지 반대표를 던질 수 있는 '자격'을 획득했다고 생각한다. 국민연금이 이 자격을 제대로만 활용한다면 우리나라의 기업문화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데 앞장서는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을것으로도 여겨진다.

몇 년전, 땅콩회항 사건으로 유명세를 타고 남모를 외로움과 고통을 겪었을 박창진 사무장이라는 분도 이번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대표이사직 박탈 사건을 바라보면서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재벌을 상대로 상식을 요구하며 맞선다는 것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굉장히 어렵고 힘든 일이었으리라. 어쨌든 그 분이 용기를 내 주신 것이 시발점이 되고, 나비효과가 되어 오늘의 사건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다.

오늘을 계기로, 대한민국의 주식시장이 개인 투자자들에게 보다 더 우호적으로 변모하기를

그리고 회사의 이익을 주주들과 공정하게 분배하는 투자하기 좋은 나라가 되기를 바라고 소망하며 글을 마친다.

 

2019/03/23 - [주식&채권 이야기/정보 혹은 잡설] - [짧은 일기]현대차와 엘리엇(한국형 배당귀족주의 등장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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