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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15년 전 쯤에 한게임, 넷마블 등의 게임사에서 서비스하는 온라인 고스톱(맞고)게임이 큰 인기를 끌었었다. 나도 온라인 고스톱 게임에 푹 빠져 지내던 때가 있었으며, 현실은 비록 시궁창일지라도 온라인에서는 만수르 뺨을 때릴 정도로 많은 게임머니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에 왠지 모를 자신감을 느끼던 시절이었다.

온라인 고스톱 게임에서 부자가 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반복되는 승리를 통해 게임 머니를 지속적으로 불려나가는 방법

둘째, 현질을 통해 단기간에 게임 머니를 획득하는 방법

 

나는 젊었고, 돈이 없었기에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첫 번째 방법뿐이었다.

현실 세계에서 만수르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가능성이 낮다. 여기에 비하면 온라인 만수르가 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 하지만 현질을 배제하고 나면, 순수 노력만으로 온라인 만수르가 되는 것도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오랜 세월이 흘렀기에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온라인 고스톱 게임은 자신이 보유한 게임 머니에 따라 입장할 수 있는 채널이 달랐다. 10만원을 가진 자는 점 100원 채널(하수 채널)에서 게임을 플레이해야 하고, 1억원을 가진 자는 점 1만원 채널(고수 채널)에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식이었다. 조 단위의 게임 머니를 보유한 자들은 점 100만원 채널에서 게임을 할 수 있는 등 나름대로 서열이 정해져 있어서 비슷한 수준의 자본가(?)들끼리 만나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설정이 되어 있었다.

어쨌든, 돈을 빨리 따기 위해서는 점 100원에서 돈을 딴 후에 점 500원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점 1천원, 점 5천원, 점 1만원으로 점점 판돈을 올려야 돈이 불어나는 속도도 빨라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파산을 수도 없이 반복하고 넷마블(한게임)에서 제공하는 기본 시드 머니를 받아서 다시 점 100원부터 시작하기만 할 뿐 나의 게임 머니는 불어나지 않았다.

 

결국 나중에는 그토록 원하던 온라인 만수르가 되어서 고스톱을 칠 수 있게 되었는데, 돈을 빨리 따야 한다는 마음을 고쳐먹으면서 플레이 스타일에 변화가 생기게 된 것이 계기라면 계기였다.

처음에 돈을 빨리, 많이 따기 위해서 나보다 게임 머니를 몇 십배 ~ 몇 백배 이상 보유한 유저들하고만 게임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계획과는 다르게 처음에는 따는가 싶다가도 어느샌가 그들에게 파산당하는 것이 공식처럼 되풀이될 뿐이었다.

 

여기서 깨달은 사실 하나,

자본이 많은 자에게는 그만큼의 기회가 있다.

50만원을 가지고 있는 나와 500억원을 가지고 있는 상대방과의 게임은 이미 시작부터 상대방이 이기도록 설계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10판을 이기더라도 1판을 크게 지면 올인을 당하지만, 상대방은 수백판을 크게 져도 또 기회가 있는 일종의 좀비인 셈이었다. 죽지 않는 좀비와 싸워 이기려 했으니 계란으로 바위를 치려던 격이었다.

 

깨달은 사실 둘,

자본이 많고, 기회가 많은 자는 여유로움도 갖추고 있다.

나는 어떻게든 판을 키워서 크게 이길 생각에 고! 고! 고! 를 수도 없이 외치다가 고박을 쓰고 돈을 물어주기도 많이 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만수르'들은 아주 안정적인 상황이 아니면 적당히 먹고 경기를 끝내는 공통점이 있었다. 처음에는 상대방이 호구인줄 알고 생각보다 돈을 적게 잃었다는 사실에 좋아했지만, 사실은 그들이 나보다 더 현명했었다. 그들의 행동은 - 작든 크든 이겼기 때문에, 해당 금액만큼 돈을 땄으며 고스톱에서 중요한 '선'을 잡고 다음 게임을 시작할 수 있기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플레이를 할 수 있다 - 는 장점이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의 플레이 스타일을 전면 수정하였다.

게임 머니가 어느 정도 모여도 바로 상위 채널로 가서 '자본가'들의 먹잇감이 되는 행위를 멈추었다. 그 대신에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하수 채널에서 게임 머니를 충분히 확보한 후에 다음 레벨로 진출하는 전략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확실한 판이 아니면 안전한 선에서 '스톱'을 외치고 다음 판에서 다시 '선'을 잡고 유리하게 플레이하다가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판에서 아주 크게 이기는 전략을 사용하였다.

그랬더니 더 이상 상대방에게 올인당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 내가 처음에 호구 같고 멍청하다고 생각했던 방법이 사실은 가장 빠르고 안전하고 확실하게 게임 머니를 불려나가는 방법 이었던 것이다.

 

문득, 주식판에 처음 뛰어들었던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상한가 세 번만 치면 3일 만에 투자금이 2배로 불어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상상을 하며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이기려고 악을 쓰며 대들었었다. 단기간에 고수익이 나길 바라는 조급한 마음으로 이 종목 저 종목 갈아타며 '여유로움'와는 거리가 먼 투자를 하고 있었다.

 

지금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자본이 많지 않기에 자본이 많은 효과를 내려고 '분산투자'를 한다. 분산투자라는 단어에는 종목분산과 기간분산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혹시 내가 투자한 한 종목이 망해도, 다른 한 종목이 크게 올라주면 그 손해를 메꾸고도 남기에 나는 시장에 살아남아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해서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 종목 저 종목을 자꾸 샀다 팔았다 하는 행위를 하지 않기에 주식창을 덜 열어보게 되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자본가의 마음으로 여유롭게 투자해야 성공한다는 진리가 온라인 고스톱 게임 속에 숨어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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